직무의 경계가 어느때보다 더 흐려지고 있습니다. 앤트로픽에서는 신입이든 공동창업자든 직원의 약 80%가 'Member of Technical Staff'라는 같은 직함을 단다고 합니다. 엔지니어든 디자이너든 PM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직급도 직무도 직함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직군 사이의 경계가 사라질 거라는 예고에 가깝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역할로 일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개발 백그라운드의 직원, 기획 백그라운드의 직원, 출발한 영역만 다를 뿐 결국 제품을 만든다는 role을 수행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미 되어가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누구나 프로토타입을 뚝딱 만들고, 개발자가 디자인 에이전트로 화면을 그리고, 디자이너가 직접 코드를 고쳐 배포하는 세상이니까요.
제품의 발매 주기는 빨라지고, 작은 팀이 해낼수 있는 결과물도 더 많아졌습니다. 좋은 소식이죠.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전문성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컴포트 존을 좋아한다
경계가 흐려졌다고 해서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컴포트 존에 머무는 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자기 작업이 덜 늘어나는 쪽을 고릅니다. 게으름이라기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가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깝습니다.
자기 전문 영역 안에서는 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알기 때문에, 편한 길과 옳은 길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편하지만 틀린 선택을 하려 할 때 스스로 멈출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낯선 영역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할 때는, 편한 길이 곧 내가 유일하게 아는 길이 됩니다. 그것이 옳은지 가늠할 기준조차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도구로 문제를 푼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입니다. 개발자에게는 모든 것이 개발 문제로,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 문제로, 기획자에게는 정책 문제로 보입니다. 영역을 넘나들 때도 우리는 자기에게 익숙하고 편한 도구를 먼저 꺼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개발자는 새 화면을 만들기 귀찮아 기존 화면에 기능을 욱여넣고, 처리가 까다로운 예외는 날것의 에러 메시지로 사용자에게 떠넘깁니다. 디자이너는 긴 텍스트나 빈 화면처럼 까다로운 상태는 미뤄두고, 예쁘게 떨어지는 경우만 다듬습니다. 기획자는 복잡한 예외를 "정책상 불가"로 막아버리거나, 손이 많이 가는 처리를 수동 운영으로 넘깁니다.
저 역시 개발자라, 새 컴포넌트를 만드느니 있는 걸 우겨넣고 싶은 충동을 잘 압니다. 셋 다 사용자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들여다보면, 자기가 편한 쪽을 고른 것입니다.
편하게 만든 제품은 나를 위한 것이다
자기 편한 대로 만든 제품은 만든 사람에게 편하지, 쓰는 사람에게 좋은 게 아닙니다. 개발이 편한 구조는 사용자에게 불친절하고, 운영이 편한 정책은 사용자에게 번거롭습니다. 보기 좋게만 다듬은 화면은 정작 사용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우리가 어디서 손을 아꼈는지 압니다. 덜 만든 흔적은 화면에 그대로 남으니까요. 매끄럽지 않은 흐름, 불친절한 안내, 어딘가 어긋난 화면에서 사용자는 대충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편함의 수혜자가 사용자가 아니라 나일 때, 그건 좋은 제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건 제품이 아니라 자기 편의입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본성을 거슬러라
방법은 간단합니다. 본성을 이겨내면 됩니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어려운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개발자가 귀찮아도 흐름에 맞는 새 화면을 만들고, 디자이너가 가장 안 예쁜 빈 화면부터 설계하고, 기획자가 까다로운 예외를 정책 안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매번 자기가 조금 더 일하는 쪽을 고르는 일입니다. 편하다고 느껴질 때, 그 편함의 수혜자가 나인지 사용자인지 한 번 더 짚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단지 착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해자가 됩니다. AI가 쉬운 길을 누구에게나 공짜로 깔아준 지금, 쉬운 길에는 더 이상 차별점이 없습니다. 누구나 빠르고 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모두가 편한 쪽으로 몰릴 때, 본성을 거슬러 어려운 쪽을 택한 사람만 남습니다. 귀찮음을 감수한 그만큼이 그대로 해자가 됩니다. 좋은 제품은 대개, 내가 불편한 쪽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