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는 제품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2026년 6월 6일

에버노트를 기억하시나요? 노션, 옵시디언 등 많은 기록 앱들이 있기 전에 기록 앱의 왕은 에버노트였습니다. 2008년에 세상에 처음 나왔고, 2012년에는 사용자 2,50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기업가치 10억 달러로 유니콘이 되었고, 2015년에는 1억 5천만 명을 넘겼습니다. 열성 팬들은 모든걸 에버노트에 기록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에버노트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왕의 자리는 지금 노션이 차지하고 있죠. 노션은 2024년 사용자 1억 명을 넘겼고, 포춘 50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쓰고 있습니다. 기업가치는 에버노트의 10배를 넘어 1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에버노트는.. 쪼그라들었습니다. 몇 년째 이렇다 할 업데이트가 없었고, 앱은 여전히 느립니다. 2024년에는 무료 플랜을 노트 50개로 확 줄였습니다. 한때 1억 5천만 명이 쓰던 서비스의 실사용자는 이제 80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내 헐값에 팔려 직원 대부분이 해고됐습니다.

에버노트는 왜 망했을까?

락인 현상은 매우 강력합니다. 특히나 기록형 툴은 더 전환하기 어렵고 싫어하죠. 에버노트에는 사용자를 붙잡아 둘 조건이 다 있었습니다. 기록 앱 시장을 사실상 처음 연 선구자였고, 수년 치 자료가 쌓인 계정은 통째로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에버노트를 '제2의 뇌'라고 부르며 기억을 통째로 맡길 만큼 깊이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모두 떠났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용자들이 에버노트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에버노트가 해주던 일을 사랑했던거죠.

그리고 노션은 그 일을 훨씬 잘했습니다. 에버노트의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노트와 할 일, 데이터베이스, 문서를 한 공간에 묶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용자들은 미련 없이 갈아탔습니다. 선점자 효과도, 지금까지 에버노트에 쌓아둔 자료들도 사용자의 일을 더 잘하게 해준다는 장점에는 비견될 수 없었습니다.

Jobs to be done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Theodore Levitt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드릴을 원하는 게 아니라, 뚫린 구멍을 원한다."1) 사용자가 원한 건 에버노트라는 제품이 아니라, 단순히 흩어진 기록을 한곳에 모으고 필요할 때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잘 모으고 잘 찾아내면 된 거였죠.

에버노트는 어떻게 했을까요? 사람들이 느린 속도에 불만을 표하는 동안 에버노트는 Evernote Food·Hello·Work Chat, 명함 스캔, 발표 모드, 심지어 양말·백팩 파는 마켓플레이스를 추가했습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제품과 사랑에 빠지지 말기

우리는 가끔씩 제품을 만들다보면 제품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사용자들이 왜 이걸 쓰는지 이해하지 않은채로 원하는 기능, 만들고 싶은 것들을 추가합니다. 그동안 어느새 시장에는 대체재들이 즐비해지고 (AI 시대에는 특히!) 지표들은 악화되기 마련입니다.

내 서비스에 사용자들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제품과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 사용자의 할 일과 사랑에 빠지세요.

드릴을 열심히 만들기보다 뚫린 구멍을 더 잘 만들 방법을 계속해서 찾고, 이를 발전시키세요.

  • 사족. LLM wiki로 사용자들이 기록까지 ai에게 맡기면서 노션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죠.

각주

1)
https://www.library.hbs.edu/working-knowledge/what-customers-want-from-your-products